성과를 이야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부터일까? 식구들 먹이기 위해서 산으로 들로 나가던 시절에는 성과라는 단어는 없었다. 성과는 생활을 영위하는 것 이상의 잉여(剩餘, surplus)가 생기며 등장했다. 인류사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하는 것을 멈추고, 남은 것을 서로 교환하기 위해 화폐 비스무리 한 것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잉여 활동은 확장됐다. 잉여를 더 많이 만들수록 남들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것이 확인됐고, 연명하기 위한 생산이 아닌 축적하기 위한 생산을 통해 부(富)를 실현했다. 당연히 단위 시간당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을 고민하면서, 성과라는 개념이 도출됐다.
성과를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고, 명확한 결과를 보여준 시점이 산업혁명 시대다. 물론 이전에도 성과라는 단어와 개념이 존재했지만, 단위 시간당 생산량이라는 관점은 산업혁명부터 제대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시기에 여성 노동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옷감 만들기가 방직 기계로 대체됐다. 장시간에 걸친 반복적인 작업이 필요하기에 비쌀 수 밖에 없었던 면직물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산업의 변화, 즉 혁명을 일으켰다. 사람의 힘이 아닌 기계의 힘,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힘으로 수력이 사용되면서 시간당 생산량이란 개념을 실현했다. 수력에 의해 움직이던 방직 기계가 증기 기관이라는 혁신적인 동력원을 통해 산간, 해안 지대에서 수요처와 가까운 도시 지역으로 옮겨졌다. 충분한 생산량은 지역내의 소비가 아닌 국가간 무역을 촉진하면서 무역상이라는 거대 자본의 탄생 배경이 됐다. 그리고 해상 무역을 통해 세력을 키우던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무찌르면서 당시 세계 판도가 바뀌는 사건도 일어났다.
생산 관점에서 또 다른 성과의 변화를 보여준 것이 포드(Henry Ford)의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자동차, 즉 모델 T(Model T)의 생산 방식이다. 현재까지도 마찬가지이지만 자동차는 대단히 복잡한 생산품이다. 수많은 부품들이 오차없이 동작해야만 돈값하는 물건이라 비쌀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복잡한 동작을 제대로 이해하고 퀄리티 있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사람도 흔하지 않았다. 이래저래 비쌀 수 밖에 없는 물건이었고, 가진자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다. 이런 값비싼 자동차를 일상의 자동차로 변화시킨 것이 바로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다.
포드가 실현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이전과 이후의 가장 큰 차이는 효율(Efficiency)이 생산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복잡성을 이해하는 소수의 전문가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전문가를 돕는 조수들이 있었지만 전문가의 지시를 받아야 했고, 전문가 수준의 경험을 쌓기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에 반해 포드 방식에서는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차가 작업자가 위치한 곳에 오고 작업자는 자신이 해야할 지정된 작업을 자신 앞에 차가 머무는 시간 안에 마쳐야 한다. 각각의 작업은 단계로 구분되고 작업자는 자신의 작업 결과만 책임을 지면 된다. 차량 한대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전체 과정을 마쳐야 완성되기 때문에 한 과정의 실수가 전체 품질에 영향을 준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감당할 작업의 난이도를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 과정을 분해해 잘게 나누는 방법이 사용됐다. 언뜻보면 잘게 나누면 사람만 더 많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이 더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한 과정 자체의 복잡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를 숙련도가 낮은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
공정에 참여하는 사람이 감당할 문제가 간단해졌으니 이제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만 올리면 된다. 이전 속도는 꼭 있어야만 하는 “사람의 속도”에 의해 좌우됐지만 이제 낮은 속도를 보이는 사람은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으로 교체하면 그만이다. 꼭 그 사람이 아니어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 대량 생산 체계라는 시스템의 등장이고, 속도의 주체였던 사람은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따라가는 존재가 됐다.
대량 생산 시대에서 성과를 좌우하는 것은 효율이다. 단위 시간당 생산량(Throughput)이라는 숫자가 성과를 좌우하고, 숫자가 올라갈려면 나만 잘하면 되는게 아니라 전체가 잘 해야 한다. 단순화해서 업무 단위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사람은 자원(Resource)이기 때문에 너무 많으면 곤란해진다. 프로세스를 효율화하고 효율화된 프로세스에 맞는 사람이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러니지만 이런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 소위 공교육이 도입된 것도 사실이다. 알아야 하지만 많이 알 필요는 없기에 초등학교 과정이 대부분의 산업화 시작 국가에서 시작된 이유이기도 하다. 중/고등 교육은 수반되는 비용 문제로 OECD 수준의 국가는 돼야 생각해 볼 수 있다.
Throughput 중심의 성과에 대한 관점 변화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촉발된 새로운 경쟁 구도로부터 시작되었다. 냉전과 거대 자본을 통한 글로벌 경쟁 환경은 더 빠른 계산을 요구했다. 주판알을 튕겨 숫자를 맞추던 시대에서 순식간에 몇 만장의 회계 장부를 처리하고, 달에 사람을 보내기 위한 수만가지 변수를 고려한 반복적인 계산이 필요한 환경은 기존과 다른 방법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컴퓨터가 복잡성과 반복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트랜지스터에서 출발한 고직접회로(IC) 칩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 제작에서 사람이 기여하는 핵심은 설계(Design)지 제작(Manufacturing)이 아니다. 사람이 직접 필요한 단계 역시 설계 과정이지 제작 과정이 아니다. 대부분의 제작은 사람 손으로 할 수 없는, 마이크로미터 혹은 나노미터의 작업이다. 손떨림이 있는 사람이 하는게 아니라 기계가 할 수 밖에 없다. 더해서 설계를 하더라도 생산 설비와 환경이 고려된 방안이 나와야 실효성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반복적인 작업은 이제 기계가 담당해야 하고, 사람은 설계와 구조를 고민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만족시킬 수 있다.
생산에서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Performance를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이다. 대량 생산 시대에서 사람은 자원으로 정의되었으며 심한 경우 시스템을 구성하는 부속품 수준으로 간주된다. 국가 수준에서 제한된 지식의 확산이 2차 대전 이후 국가 경계를 넘어 극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IC칩과 컴퓨터의 출현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이제 정보(Information)라고 말하고 있고, 인터넷을 통한 정보 유통이 새로운 권력과 부의 지배 구조를 만들고 있다. 정보 기반의 새로운 산업 혁명이 시작됐다.
지식 기반 산업 시대에 “사람”에게 요구되는 성과는 단위 시간당 생산량이 아니다. 높은 가치 창출을 자기주도적으로 만들길 요구하고 있다. 시키는 일을 하면 되는게 아니라 맥락을 파악하고 종합적인 판단과 실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컨베이어 벨트의 한 부분에 서 있는게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를 창조하는 것이 새로운 산업 혁명 시대의 개인에게 요구되는 성과다.
세상의 흐름을 살펴보면 아이러니 투성이다. 역사를 재미뿐 아니라, 지식으로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