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담론(談論)으로 자주 이야기하는 것이 동기(Motivation)부여다. 인간이 사회라는 체계를 만든 이후부터 스스로에게 혹은 함께하는 구성원에게 던지는 가장 많은 질문이 “왜 일하는가?” 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사회라는 시스템에 속할 수 밖에 없다. 시스템을 인정한다면 자의든 타의든 리더 본인을 포함해 구성원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자의와 타의가 오묘하게 섞여 만들어진 대표적인 사회가 가족이다. 가족의 리더인 엄마와 아빠는 사랑을 매개로 자율적으로 성립되지만 구성원이 될 자녀들은 선택권을 부여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가장 입장에서 최소 어느 시점까지는 가족 구성원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역할을 해야 한다. 누가 나의 아들이 될지 딸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가장이라면 가족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일반적인 가족 공동체 안에서 가장의 역할이다. 물론 언제까지나 이 무거운 짐을 가장의 어깨에만 얹을 수 없기에 가족 안에서 생활의 역할과 부담을 나눌지 진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왜 일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이 가족의 부양이 아닌 시점이 온다. 나이가 들고 시대가 변하는데도 가장의 역할이 부양에 대한 압박뿐이라면 고통이 될 수 있다.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도 일의 이유에 대한 질문이 있는 것처럼 자의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 많은 질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직을 통해 자신이 속할 조직을 선택할 수 있기에 왜 스스로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물음을 갖는게 당연하다. 질문에 제대로 답을 얻는 사람은 일에 대한 재미와 보람을 느낄 것이고, 당연히 만족할만한 결과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반해 답을 찾지 못한 사람은 조직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답을 찾게 되고 나아가 이직/이동을 준비하는 기간동안 하는 일 역시 불만에 가득찬 결과일 것이다. 불만에 가득찬 결과는 하는 사람에게도 불행이고 결과를 기대하는 조직의 다른 사람에게도 불행을 안긴다.
“왜 일하는가?”에 대해 어떤 답을 하는지가 구성원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동기부여는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자신이 찾은 답에 따라 개인이 조직에 기여하는 수준과 결과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개인과 조직이 만들어낸 결과를 성과(Performance)라고 부른다. 양적, 질적 성과를 기대한다면 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시대 변화를 통해 일하는 체계의 변화가 많았지만 시스템을 주도하는 리더가 제시하는 방향과 실천하는 모습에서 리더 본인을 포함해 구성원이 생각하는 일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일의 주체인 개인이 갖는 일의 의미에 따라 결국 시스템의 동작이 결정된다.
이어지는 글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먼저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번째는 일을 하는 이유, 즉 동기는 주어지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답하는 것이다. 질문이 있을 수 있지만, “왜” 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바로 주체로서의 개인이다. 두번째는 높은 성과를 위해 특정한 장치를 이용해 동기를 높이는 것은 억지일 수 밖에 없다. 일시적으로 동작하지만 지속되는 걸 기대하기 어렵다. 일에 대한 스스로 비슷한 답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방향성을 갖고 모여 결과를 만들 때 위대한 결과가 만들어지고, 높은 수준의 결과가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