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는 2020년 즈음부터 국내에서도 Psychological Safety라는 용어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됐다. 이전에 영어로 알던 용어였고, 영어 자체로 그냥 사용했었는데, 한국어 번역은 “심리적 안정”이었다. 단어 자체 번역하면 “안전(Safety)”이지만 의역해서 “안정”이라는 단어를 썼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안정이 아닌 안전으로 번역하는 것이 추세다. “Psychological Safety 한글 번역”을 검색어로 구글링해보면 검색 결과 대부분에서 안정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심리적인 안정과 안전의 차이는 뭐길래 처음 안정이 안전으로 변화했을까?
국내에서 심리적인 안정이라는 용어(혹은 개념)는 번아웃(Burnout 혹은 Burnout Syndrom)가 깊은 관련이 있다. 1990년대 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던 2010년부터 MZ 세대라는 용어와 함께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출현했다. 사실 번아웃은 미국에서 1970년대부터 나타난 사회 현상이자 병리 현상이다. 1974년 심리학자 허버트 프루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번아웃(Burnout)”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을 돕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심한 스트레스와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들의 부정적인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번아웃을 사용했고, 현대에 일반화되어 직업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소진 상태에 이르는 현상을 이르게 되었다.
번아웃은 새로운 생각과 사상을 가진 세대가 기성 세대의 사상과 충돌하며 드러난 단편이다. 기존 세대가 일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사고와 접근 방법을 가진 새로운 세대가 함께 있을 때 충돌은 불가피하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의 히피 문화가 그랬고, 한국은 80년대 민주화 이후 태어난 소위 MZ 세대가 그렇다. 성장기 육체 노동의 해방과 고등 교육은 더 높은 이상을 새로운 세대에게 심어주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는 시점에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대적인 준비가 되질 않았다. 70년대 미국만 보더라도 냉전의 전성기이면서 베트남 전쟁시기였고, 2010년대 한국은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와 “실리콘밸리 처럼” 라는 사대주의(事大主義)가 지배하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업계의 현재 상황을 보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개인의 이상은 다른 차원에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치, 비전, 미션”은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데 한 달 186만원(2024년 최저임금 합의안 기준 월 총 세후 금액)을 받기 위해서는 불합리성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합리성을 최근 MZ 세대는 공정(Justice)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번아웃은 일에 대해 개인이 갖는 관점과 조직(혹은 사회)이 개인에게 일을 통해 요구하는 관점의 충돌에서 발생한다. Psychological Safety를 “심리적 안정”으로 번역한 것은 일을 대하는 개인 관점을 우선에 뒀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통해 배운 “일”이 실제 현장에서 충돌할 때, 개인은 조직과 사회를 통해 “내가 감당할 일”을 이야기한다. 일을 하는 주체가 감당할 수 있는 체계를 조직과 사회가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안정”을 통해 표현한다. 개인이 감당하기에 양적으로 많은 일들이 짧은 시간에 주어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측면에서 일은 생계 혹은 생활을 위한 일(Job)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반해 “심리적 안전”으로 번역은 본인이 일을 실행하는데 있어 안전함을 의미한다. 조직 안에서 내가 자유로운 의견을 낼 수 있다고 느낄 때 “심리적으로 안전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심리적 안전은 개인이 일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일이 되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 즉 결과에 대한 안전망을 의미한다. 안전망이 동작한다고 느낄 때, 개인은 조직이 요구한 일을 곧이 곧대로 보는 것이 아닌 일을 통해 달성할 가치를 수행 주체 관점에서 해석하고 실행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나 보다는 내일 혹은 미래의 내가 일이라는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을 원한다. 일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고, 개인은 일을 직업(Career) 측면에서 살펴본다.
심리적 안전은 조직 관점에서는 가치 중심으로 결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정보화 및 지식 산업 시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만들고 있다. 어제 성공했던 방식이 내일도 동작하리라 확신할 수 없다. 변화의 속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다양한 관점과 의견이 필요하다. 당연히 적절한 방안을 채택하고 실행해야 한다. 심리적인 안전망은 비난받지 않고, 참여를 보장하고, 실행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전제 되어야 한다. 구성원이 조직(조직의 리더)를 신뢰하면, 가치 실현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질 수 있고, 조직은 더 빠른 혹은 큰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심리적 안전은 조직과 구성원이 성장이라는 피드백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다. 구성원은 조직이라는 환경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발현하여 성장할 수 있고, 조직은 비전과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구성원의 참여와 기여를 담보할 수 있다. 조직과 구성원이 이와 같은 선순환적인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고, 조직과 리더가 책임질 몫이다.
번아웃이 왔다고 느낄 때 가장 흔하게 하는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내가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지?” 와 같은 질문이다. 구성원이 갖는 질문에 리더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리더는 구성원의 참여와 기여가 조직에 미칠 영향과 더불어 개인의 발전과 성장 관점에서 어떤 부분을 가져갈 수 있는지 답해야 한다. 단순히 조직의 현재를 위해 일하는 부속이 아닌 독립적 개체인 구성원의 내일 모습을 같이 나누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직장인 개인 뿐만 아니라 직업인으로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심리적인 안정이 아닌 안전은 단순히 일의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이 과정을 통해 발전하길 원한다면 무엇을 배우고 보여줘야 하는지 피드백하고, 본인이 성취할 수 있는 과정을 제시해야 한다.
리더가 제시할 심리적인 안전은 구성원의 커리어에 바탕을 둬야 한다. 물론 구성원이 조직을 통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성장 곡선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특히나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점수에 맞춰 개인의 미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지금 있는 곳이 내가 원하는 그 곳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게 현실이다. 조직원이 번아웃에 빠지지 않고 지속 성장하도록 지원하기 위한 피드백이 필요하고, 이런 피드백은 개인 성장에 더 도움이 되는 피드백이다. 조직과 함께 개인의 성장도 책임져야 하기에 리더의 역할은 어렵고 힘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