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성장은 매우 중요하다. 지식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매일의 변화에 맞서기 위한 스스로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이를 성장이라고 부른다.
개인이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조직도 마찬가지다. 기업 관점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만들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므로 치열하게 성장을 고민하고 달성해야 한다. 이 맥락에서 조직의 목표 설정과 결과는 중요하고, 구성원 모두가 과정에 최선을 다해 참여해야 한다.
리더는 조직의 성장을 책임진다. 조직의 성장과 성장에 대한 기여는 보상과 연결된다. 큰 보상을 원한다면 조직의 큰 성장을 만들거나, 만드는데 기여하면 된다. 소위 중추적인 기여를 한다면 커진 파이에서 더 큰 몫을 가져간다. 성과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성장 이야기가 아닌 보상 이야기로 들린다. 그리고 리더는 조직 성장을 책임지는 사람이 아닌 보상을 챙기는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리더가 책임진다는 조직의 성장이란 뭘까?
어느 조직이든 사회라는 조직 시스템 내부에 자신의 원하는 혹은 바라는 역할이 있다. 우리의 미션(Mission) 혹은 비전(Vision)은 조직이 갖는 사회의 역할을 정의하고, 조직의 역량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다. 조직의 성장은 궁극적으로 이를 달성하는 것이고, 부합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역량은 조직을 움직이는 뼈와 근육이다. 리더는 세포인 구성원을 조합하여 혹은 스스로 조합되어 실질적인 근육이 되고, 뼈가 되게 한다. 뼈와 근육을 통해 우리는 역량을 확보하고, 리더의 조율에 의해 움직임이 결정된다. 리더가 만든 뼈와 근육의 조합과 조율이 미션/비전이 도달 가능할지, 어느 만큼이면 가능할지를 결정한다.
리더가 책임지는 조직의 성장은 전체 조직의 목표와 조율(Align)된 담당 조직의 목표 달성이고, 달성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직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조직 역량은 결국 구성원이 보여줄 개인 역량의 합이다. 구성원이 조직안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동료와 최대 효과를 만들 수 있도록 리더가 조율한다. 리더의 책임하에 이뤄진 협동 작업이 실제 이뤄지고 결과로 평가받는다.
뛰어난 결과를 만들고, 좋은 평가를 받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다. 여기서 결과 후 보상이 아닌 보상을 먼저 생각하면 뛰어난 결과에 집착하게 된다. 뛰어난 결과는 대부분 많은 투자를 요구한다. 여기에 집착이 더해지면 소위 “몰빵”이라는 것이 벌어진다.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은 개인 시간 뿐만 아니라 자존심도 걸게 되고 결국 포기할 수 없는 대상과 작업이 된다. 몰빵된 작업 결과는 성공이든 실패든 좋지 않다. 특히 실패라고 판정되면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큰 작업 결과에 대한 실패는 참여한 구성원에게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가장 먼저 판정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고객에 의해 혹은 내부 경영진에 의해 이뤄진 평가와 판정에 동의하지 못하면 조직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이런 불신이 겹겹이 쌓이면 다음 작업에서도 불신의 시선으로 조직의 판단과 결정을 바라보게 된다. 개인에게 기대하는 최선의 역량 발휘 뿐만 아니라 리더의 조율을 온전히 따르리라 확신할 수 없다. 두번째 영향은 개인 스스로에 대한 평가다. 본인이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스스로를 저평가하면서 무능력을 탓하는 경우다. 쉽게 번아웃(Burnout)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개인의 다음 성장을 위한 도전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스스로 포기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자기 발전에 정체되고 구성원으로 기여할 수 없게 된다.
조직의 성장을 책임지는 리더는 조직과 구성원에게 가해지는 실패의 영향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는 가장 큰 배움의 기회지만, 배울 수 있는 환경이어야 배운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안전하게 빠르게 배울 수 있다. 물론 넘어진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 자전거 타기가 그만큼 재미있고, 이렇게 하면 넘어진다는 걸 알았다는 배움이 있기 때문이며, 당연히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넘어져도 잡아줄 거라는 믿음이라는 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은 넘어져 무릎이 까질 수 있을 정도는 감안하고 있을 것이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벌어져 울먹이더라도 한번 더 타보자고 이야기해볼 수 있다. 자전거 타는 재미는 실패(무릎 까진 아픔)를 배움으로 삼고 도전해볼 가치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뼈 부러지는 상황이 벌어지면 타는 사람은 트라우마를 갖게 되고, 다시는 자전거 핸들을 잡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는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 즉 실패를 관리하지 못한 리더의 잘못이다.
결과가 성공일지 실패일지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다. 알 수 있다면 실패할 일은 애시당초 하지 않았을테니. 알 수 없기에 성공/실패를 가늠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가능한 빠른 시점에 실패(Fast Fail)를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 시점에 찾아낸 실패는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 당연히 실패 규모 역시 감내할 수 있는 소규모(Small Fail)이다. 실패라고 하더라도 조직 목표를 위해 실행한 것이기에, 목표 달성을 위해 시도한 결과 평가와 결과에 도달 과정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큰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참여자 관점에서 오늘의 나와 다른 내일의 나를 위한 자양분으로 실패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실행 조직 역시 실패 경험을 통해 조직적인 개선을 도출하고, 조직의 역량을 발전시킨다.
실패가 배움의 기회가 되고, 과정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되면 조직과 개인은 성장한다. 실패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응원의 메시지를 받으면 제대로 된 되돌아 보기를 할 수 있다. 사람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과정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고, 잘못된 과정을 인정함으로써 이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포용적 문화라면 실패 경험을 공유할 수 있고, 과정의 오류를 개인 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참고할 수 있다. 전체 조직이 경험을 공유하고, 한 단계 발전할 기틀이 만들어진다.
성공과 실패는 0과 1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흑과 백 사이에 넓은 회색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처럼 무엇이 성공이고 실패인지 명확하지 않다. 리더가 스펙트럼 어느 회색 지대에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현재 상태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조직이 지향하는 목표의 가치, 달성한 결과(혹은 마일스톤), 앞으로 나아갈 경로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 지점에서 리더가 확보한 넓은 시야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실패가 아니라 경로 수정(혹은 피봇팅 – Pivoting)이다. 실패가 아니더라도 만회 비용은 항상 만만치 않음을 잊으면 안된다.
실패와 피봇팅 모두 리더의 책임이고, 책임이어야 한다. 방향을 바꾼다는 건 리더가 애초에 잘못된 방향을 잡았거나 빠른 실패를 파악하기 위한 일하는 방식을 수립하지 않았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리더가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책임지지 않는 리더는 무책임한 리더이고, 실패 이후의 재도전 혹은 새로운 도전을 같은 리더와 하고 싶은 구성원은 없을 것이다. 책임지는 리더는 실패의 무게를 경감시키고, 영향을 구성원이 아닌 자신에게 돌아오게 한다. 구성원의 현재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는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Fast Fail, Small Fail은 책임지는 리더가 있을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