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커뮤니케이션 – 공감

요즘(2010년대 이후) 공감이라는 단어를 많이 듣는다. “공감해줘야 한다.”부터 “왜 공감 안해주냐?” 같은 격양 섞인 대화와 함께 “공감 능력”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공감을 단어적으로 풀어보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이해하거나 생각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위키백과)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공감이라는 단어는 내 생각이나 의견을 지지해달라는 의미로 잘못쓰이는 경우가 많다.

공감은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었을 때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감정”에 방점을 두지만,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감정은 이성이 아니고 당연히 논리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높은 전파력을 갖는다. 다른 말로 분위기에 휩쓸려 동요된다. 동요된 감정은 일시적일 뿐이라 지지는 되어도 입장이 될 수는 없다.

마음으로 이해한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나와 그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완전한 입장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알 수 있다면 입장에 가까워질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들어 업무 성과 혹은 몰입이 현저히 낮아진 동료가 있다고 가정하자. 피상적으로 나타난 현상만으로 이런 저런 좋은 충고를 해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능력 부족 혹은 한계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특히나 동료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담당하거나 새로운 도메인(Domain)의 일을 담당하는 경우에 기대했던 수준이 아니었다는 단정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동료의 최근 집안에 우환이 생겼다면? 동료의 건강하시던 부모님이 갑자기 병환에 걸리셨다면 동료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아질 것이다. 동료도 직장인으로서 업무에 집중하고 싶다. 하지만 부모님의 상태가 어떠신지, 식사는 잘 하셨는지, 병원 진단 결과는 어떻게 나왔는지 자식된 도리로 궁금하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연차내고 병원에 동행해드리고 싶을 것이다. 가능한 빨리 일을 마쳐야 하고, 긴 통화를 위해 자리를 비워야 한다. 회의 중에 온 병원비 문자는 큰 걱정거리가 되고, 회의 맥락을 놓쳐버리게 만든다.

리더인 당신에게 비친 동료의 모습은 이전과는 다른 집중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 당연히 면담(혹은 1on1)을 할 것이고,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 이전과 다른 모습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동료가 현재의 상황을 털어놓는다면 천만 다행이다. 동료의 현재 상황이 업무로부터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료의 문제에 공감한다면 부담을 덜기 위해 리더 본인을 포함해 팀이 함께 동료가 우선은 가족을 먼저 돌 볼 수 있도록 짐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인사/복지 정책을 더 많이 알고 있을 리더가 제도를 알려주거나 담당자와의 미팅을 주선해줄 수도 있다. 과정을 통해 문제를 겪는 동료는 팀과 리더가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수 있고,리더는 어려움을 겪는 동료의 상황이 개선되면 이전 같은 기여를 확신할 수 있다. 개인 경험으로도 방학기간 유치원 종일반 하원 시간 때문에 고민하던 맞벌이 직원의 퇴근 시간을 한시적으로 조정해서 아빠와 아들과 팀장이 모두 행복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구성원에 따라 면담 결과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만약 공과 사를 분명하게 구분하거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동료라면 면담에서 단순히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되겠지만, 인정한다고 부모님의 건강이라는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상황이 지속될수록 같은 면담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자칫 일을 제대로 마무리 못하게 되거나 동료가 팀을 떠날 수도 있다.

리더에게 최악의 상황이다. 당장은 진행 업무에서 관리 범위를 벗어난 불확정 요소가 등장했다. 역량있는 구성원이 빠지면 일시적인 업무 수행 능력의 상실이 아닌 항구적인 손실이다. 이를 메우기 위해 채용을 포함한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리더십의 공감은 단순히 사람을 이해하는 것을 넘는다. 조직이 목표와 결과를 만들기 위한 가장 근본 요소는 사람이다. 사람이 결과를 만든다. 사람의 역량 발휘는 서있는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준 상태여야 한다. 그리고 사람으로 짜여진 조직 시스템이 큰 결과를 만들고, 더 큰 목표로 나아간다. 때문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개인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구성원의 입장이 되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공적 구성원과 사적 개인

핵가족 시대를 넘어 1인 가족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Privacy)는 중요하다. 사회 생활, 조직 생활은 공적 활동 영역이다. 공적(Public) 영역에서 사적 영역의 침범이나 간섭은 민감한 이슈다. 사적 영역을 공유한다는 건 친구나 가족 사이에나 가능한 일이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사적 영역을 알아야 한다. 리더십은 공적 영역의 역할이다. 리더십의 공감이 어려운 이유다. 특히 존댓말과 장유 유서와 같은 한국 문화는 공감을 더 어렵게 만든다. 실리콘밸리에서 공감을 조직 관리에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과 달리 나이 차이가 언어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특성도 있다고 본다. 20대와 50대 엔지니어가 스스럼없이 “우리는 친구다.(We are friends)” 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 말이다.

리더는 공감을 위해 구성원의 사적 영역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앞선 언급처럼 개인의 사적 영역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업무 담당인 개인을 아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아침 출근 후의 피곤 정도를 통해 출퇴근 거리를 가늠해볼 수 있다. 서울이 집인지, 경기도에서 출퇴근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주말의 일상 이야기를 통해 1인 독립 세대인지, 부모님과의 관계나 부양 관계 수준을 알 수도 있다. 가정을 꾸민 구성원의 경우 아이가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 연령대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사적 영역의 일부만으로도 공적 영역에서 구성원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리더는 구성원의 친구가 아니다. 물론 사적 영역에서 친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리더가 친구같은 사이를 절대 주장해서는 안된다. 한국 사회에서 아들같고, 딸같은 나이 또래의 구성원을 만날 수 있지만 절대 아들이나 딸이 아니다. 권위를 앞세워 공감하겠다는 이유로 구성원의 사적 영역을 파고드는 행위는 절대 해서도 안되고, 용납되도 안된다. 사적 영역의 정보를 공개하는 건 구성원의 자유 의지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자유 의지에 의해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그 범위는 신뢰 수준을 따라야 한다.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 혹은 리더에게 보여준 신뢰 범위를 정보를 알게된 대상도 존중해줘야 한다. 구성원의 프라이버시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리더십 교육 과정에서 팀 리더는 구성원의 “아버지(어머니) 뭐하시는지?”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에 절대로 그 집에 젓가락 숟가락 개수를 알려고 하지 말라고도 강조한다. 구성원의 관점과 입장을 이해하는 필요한 수준에서 멈추고 개인을 존중해야 한다. 선을 절대 넘으면 안된다.

공적 구성원이 아닌 사적 개인을 아는 건 어렵다. 사람을 알아야 하는 이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친해져야 한다.

친밀감

상대 입장에서 공감을 하기 위해서라도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 피상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서 가족의 어려움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알자고 덤벼들면 안된다. 누구도 개인 이야기를 꺼내 놓지 않는다.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야 한다.

리더십은 조직 피라미드 계층의 높은 위치(High position)에 있고, 일반 구성원은 낮은 위치에 있다. 일반적인 구성원은 이런 높이 차이를 알고 있다. 친해지자고 높이를 뛰어넘는 구성원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혀 높이를 맞춰야 한다. 구성원은 할 수 없어도 리더는 높이를 극복할 수 있다.

친밀감을 쌓는 첫 걸음은 자주 보는 것이다. 스몰토크(Smalltalk)가 강조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해진 회의실이 아닌 자리 옆에서 간단히 짧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주 보는 것을 실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회의실이라는 공간이 주는 무게감은 가볍게 친해질 기회를 주지 못한다. 이에 반해 업무 이야기라도 자리 옆에서 2~3분 정도 짧게 나누는 대화를 종종하는 것이 더 좋다. 회의실 테이블 건너 거리(1.5m)가 자리 의자 옆(30cm)으로 준다. 짧은 시간이지만 1:1로 상대방과 내가 온전히 한 주제에 집중할 기회다. 개인적으로 구성원을 자리로 부르기보다는 시간되는지 확인 후 담당자 자리로 찾아가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답을 듣는다. 궁금한 점을 바로 해결할 수 있을 뿐더러, 리더가 찾아간다는 사실만으로 구성원의 존중감을 높일 수도 있다.

친해지는 방법으로 모임의 힘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대상이 많은 경우, 개별적인 친밀감을 쌓는 방식은 자칫 특정인에게 과도한 관심을 주거나 사적 영역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갖는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 수 있다. 이에 반해 집단이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는 각자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또 이야기를 덧댈 기회도 있다. 업무 이외의 날씨, 취미, 사회 이슈에 대한 풍부한 꺼리가 있다. 리더십 여부를 떠나 자연스럽게 각자가 어떤 관심사가 있고, 뭘 재미있어 하는지 알 수 있다. 쏘카의 기술 조직에서는 반기 단위로 기술 조직과 제품 조직을 임의로 인원 구성을 섞어 진행한 소풍 제도가 있다. 서울숲이라는 좋은 공간이 있어 가능했지만, 이런 기회를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즐긴 이유는 조직의 다른 구성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팀 점심은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다. 팀원끼리 밥먹는 건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라이엇게임즈 시절 미국 출장을 가면 매번 협업 팀 점심에 초대 받았다. 기술 영어가 아닌 일상 영어라 개인적으로 곤욕스러웠지만, 오가는 이야기를 통해 어떤 친구가 있고 어떤 성향인지 알 수 있었다. 또 한국팀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왜 문제인지를 자연스럽게 전할 시간이기도 했다. 원래 이런 형태의 점심을 매일 하는지 궁금했는데, 팀 EM(Engineering Manager, 한국식 팀장)에 따르면 1주일에 2회, 전체가 참여하는 점심을 갖는데 그 시간에는 모든 구성원이 참여한다고 한다. 밥 먹으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다.

개인적으로 회식을 강조한다. 특히 프로젝트 회식의 경우 꼭 필요하고 되도록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한다. 프로젝트와 같이 여러 팀/조직이 함께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에도 참여자를 알 기회가 필요하다. 알게 되면 이해하게 되고, 돌려 말하는게 아니라 바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식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있는 것을 안다. 억지로 마셔야 하는 술이나 높은 분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집에 가지 못하는 분위기 등. 이런 방식은 없어져야 할 방식이고, 리더십이 스스로 이 방식을 없애야 한다. MZ 세대가 회식을 싫어하는게 아니다. 억지로 마셔야 하는 술과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를 싫어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색한 형 동생

친밀함이 쌓이다보면 자연스레 한국적인 호칭이 등장한다. 바로 형(님) 혹은 동생(아우).

공적 영역이 사적 영역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되는 것처럼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에 관여하는 것도 차단하는 것이 옳다. 개인의 집합이 조직이라는 사회 집합을 만들기 때문에 조직 역량을 최대치로 만들기 위해 개인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개인이 형님, 동생이라는 강한 친밀 관계를 통해 조직에 영향을 미치면, 조직이 달성해야 할 목표보다 개인 목표가 우선될 수 있다.

구성원이라면 조직 목표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경우에 따라 조직의 큰 목표(Global Maximum)를 위해 개인(혹은 세부 조직)의 목표(Local Maximum)가 희생될 수 있다. 강한 개인적인 친밀 관계는 희생에 저항할 근거를 줄 수 있다. 현명한 리더라면 굳이 조직 운영 관점에서 친밀함의 선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를 넘는 경우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 사회 생활 통해 알게 된 인간 관계에서, 형, 동생 관계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