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분기를 시작하면서 작심하고 본부에 공지한 내용이다.
앞으로 장애 대응을 제외한 일체의 주말(휴일 포함) 특근을 승인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2분기는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해내야만 했다. 늦은 밤은 물론이고, 주말까지 일을 해서 완성시켰다. 많은 일들이 완성된 건 구성원들의 공감, 집중,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야근과 주말 특근 없이 일하는 쏘카의 모습이 좋았고, 나 스스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고 내가 이야기했다.
희생한 개인 시간에 일부 보상을 더해 대체 휴가를 부여하기로 전사 방침을 정했다. 대신 본부 구성원들에게 이번 부여된 대체 휴가는 8월 , 늦어도 9월까지는 모두 소진시켜달라고 팀장들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3분기 시작 직전에 주말 특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공지를 했다. 물론 이는 내가 담당하는 SE(Service Engineering) 본부만의 방침으로 쏘카의 모든 조직에 해당 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조직장의 태도 변화를 구성원들이 곱게 받아들일리 없었다.
하반기가 되었다고 일의 양이 줄지는 않는다. 우리가 만드는 건 서비스다. 이동 플랫폼으로써 제대로 된 발걸음을 막 시작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와 확장은 당연하다.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유지할려면 쏘카 나름의 일하는 방식이 있어야 한다. 서비스를 빠르게 만든 2분기의 경험은 개인과 조직에게 그동안 쌓아온 역량의 최대치가 얼마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쏘카라는 조직 관점에서 우리가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 그 속도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함께 리듬감있게 일하자!“라는 일하는 방식이 나온 배경이다.
리듬을 갖기 위해서는 레파토리(Repertoire)가 필요하고, 레파토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쉼(Break)이 필요하다. 리듬감있게 일한다는 관점에서 우리는 쉼을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나의 쉼은 가족과 함께 쉬는 것이어야 하고 일의 관점에서 동료의 쉼이어야 한다. 그 가운데 특히 주말 시간은 업무(일)과 분리된 시간이 되어야 한다.
숙련도는 쉽게 말해 일을 다루는 요령이다. 일에 진심이라면 요령은 효율성이고 시간 활용 능력이다.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총량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일반적으로 하루 8시간, 주간 5일이 물리적인 총량이다.
총량을 넘어 추가 시간이 필요한 경우 야근 혹은 특근을 한다. 나는 이를 “빌려”쓰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필요한 시간을 미래의 나에게서 빌리는 것이다. 내일 업무를 위해 충전할 시간을 당장의 업무에 쓰면 내일의 내가 피해를 본다. 패턴이 반복되면 피로는 누적되고 일에 대한 집중은 기대할 수 없다. 실수를 포함해 업무 품질을 이야기하기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쏘카의 이동 서비스 확장과 고도화 의지를 생각하면 시간이 부족하다. 일이 되게 만들려면 부족한 시간을 빌려야 한다. 주말 특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빌리는 시간을 주중으로 한정한다는 것이다. 돌려말하지 않고, 시간이 더 필요하면 야근하라는 것이다.
일에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를 붙혀도 일은 일이다.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야근을 했던 안했던 피곤은 피할 수 없다. 누적된 피로를 그나마 회복할 수 있는 주말과 휴일마저 매몰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 스스로도 일을 떠나 잡초를 뽑거나 낚시하면서 머리를 비운다. 못읽은 책을 읽으면서 몇 년 후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를 그려보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일상에서 업무에 집중하고 결과를 만든다. 추상적 리듬이 아닌 물리적 리듬이 여기에 있다. 이 리듬이 깨지면 몸이 망가지기 십상이다.
주변에서 몰입(flow)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특히 시간 총량을 넘어선 일을 하고 있거나 해야할 때! 우리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무작정 잡고 있는 것을 몰입이라고 하지 않는다. 문제를 풀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을 때를 “몰입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몰입의 시간은 재미의 시간이다. 이 경험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다. 이 재미에 누군가가 보상을 이야기하면 그 다음부터는 노동이 된다. 업무로써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게 최선이다. 항상 이럴 수 없기 때문에 시간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맺고 끊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개인의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시간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직업(Career)의 범주에서 전문가의 첫 걸음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본인에게 주어진 24시간은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시간이고, 그 가운데 8시간은 일을 통해 역량을 실현시키는 시간이다. 그리고 쉼은 전진하기 위한 윤활유 역할이다. 윤활유없이 달리는 엔진은 터지기 마련이고, 우리는 이걸 번아웃이라고 부른다.
인생은 길지만 시간은 유한하다. 몰입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지 말았으면 한다. 쉼을 통해 계획하고 실행하는 방안을 통해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스스로 찾는 것이 개인도, 조직에도 가장 유효하다고 본다.
특근 승인을 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종종 주말에도 일의 시간을 위해 개인의 시간을 희생하는 구성원분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이상이 아무리 고귀해도 현실을 무시하면 완전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딜레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책(Policy)로 유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과 쉼이 뒤섞이면 결국 조직의 지속 가능성은 구성원의 자발적/비자발적 이탈로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급부상한 이유가 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