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에서 가장 많이 출장가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체류 일정으로는 넘사벽 1등이었는데, 최근에는 본사쪽과 좀 더 긴밀하게 일하는 분들이 생겨서 그나마 이 기록도 내줘야 할 듯 싶다. 내가 아닌 다른 분들이 본사 혹은 다른 지역의 개발팀들과 호기롭게 커뮤니케이션하고 함께 일하는 모습 보면 기분이 좋다. 우리가 가기만 했었는데, 최근에는 본사/타지역 친구들이 한국 오피스에 와서 함께 한국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일한다. 이야기해보면 본사 개발팀 친구들도 우리랑 비슷한 업무 부담과 기대를 가지고 한국 오피스에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보면 그 친구들도 와서 일은 참 열심이 한다.
다들 한국이 아닌 외국에 출장 간다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을 것 같다. 나도 처음 출장에는 그런 환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프로 출장러가 되다보니 실제 함께 출장온 분들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첫 3번의 출장에서 완벽한 스케줄을 작성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LA에서 봐야할 곳들은 웬만큼 봤다. (거봐~~~~) 물론 그 다음에 라라랜드가 떠버리는 바람에 더 봐야할 곳들이 생기긴 했지만,.. 굳이… 혹여 어느 분들이 나랑 출장 일정을 함께 할지 모르겠지만, 실망감 최소화를 위해 가장 최근 버전의 일상 동선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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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을 시작하기 하루 전에 도착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일요일에 출발하고 LA에는 일요일에 도착한다. 와중에 떠난 시간보다 더 빠른 시간에.
많이 피곤할 것 같은 일정이라면 휴식을 위해서 하루 정도 더 여유를 두기도 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10시간의 비행의 피곤함도 있지만, 17시간의 시차는 쉽게 하루를 온전히 쉬는 것도 힘들게 한다. 면세 팩소주를 사오는게 일상이 되었기 때문에 도착 당일은 팩소주로 장시간 비행의 피로를 잊어보려한다. 아쉽지만 절반의 성공과 실패로 나뉜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언제나 다름없이 새벽이다. 대부분 “약속의 새벽 3시”에 한번 깬다. 더 잘 수 있다면 눈에 선 핏줄이 훨씬 덜하다. 한번 깨면 다시 자기 힘든 스타일이라 처음 잘 때 잘 자길 기도한다. 하지만 기도발이 약한지 성공 확률은 20%가 되지 않는다.
일반 수면 유도제를 몇 번 시도해봤지만 정신만 몽롱하지 새벽 그 약속을 못어긴다. 왜 깨는겨!!! 결국 처방받은 수면제가 정답이다. 한 알이면 4시간, 두알이면 확실히 8시간 이상 잔다. 단 술먹고 먹으면 영영 못깨어날 수 있으니 조심하자.
최근에는 아침 6시 즈음에 호텔에 있는 운동 시설에서 걷기나 자전거 타기를 한다. 한국에서 하지도 않는 운동을 출장와서 한다는 것도 우숩다. 하지만 하면 조금이라도 일상 생활에 도움이 된다. 이번 출장에는 일정의 절반 동안 아침 운동을 했는데, 한날과 안한 날의 차이가 있다. 조금이라도 즐겁게 일하고 싶다면 권한다. 하지만 과도한 운동은 코피를 동반할 수 있으니 조심하자.
운동하고 씻고 출근 준비를 마치면 얼추 8시 혹은 8시 반이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온 출장이라면 불러서 같이 이동하거나 출발 시간이 안맞으면 걍 “우버(Uber)” 불러서 출근한다. 주로 묶는 호텔과 캠퍼스(본사 사무실)까지 안밀리면 10분, 15분이다. 지하철타고 출근하는데 못해도 한시간 이상인데, 도어 투 도어(Door-to-Door)로 이 시간밖에 안걸린다는 엄청 매력적이다.
캠퍼스에 도착하면 항상 빌지 카페에 가장 먼저 들른다. 하루 시작은 역시 핫 아메리카노다. 유기농 빵도 9시 전에는 남아있는데, 특히 애플 파이랑 크로와상은 일품이다. 커피랑 빵은 다른 식당에 맛이 뒤지지 않는다.
출장와서 매번 같은 아메리카노만 시켜먹다보니 특이했나보다. 카페 직원이 얼굴만 보고 “아메리카노?” 라고 간단히 묻고 내 이름을 컵에 적는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쯤되니 카페 고참 직원들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웃으면서 내 이름을 불러주니 즐거운 경험이다.
커피도 받았고, 간단히 배도 채웠으니 이제 일할 시간이다.
오전에는 보통 1개 회의를 잡거나 잡지 않는다. 보통 첫주에 진행하는 미팅의 2/3 정도는 출장 오기 전에 모두 잡는다. 내 출장은 대부분 한국 업무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사전에 파악하고, 일정을 확인 한 다음에 출발 비행기 타기전에 미팅을 잡는다. 사실 상대편에게 미팅을 잡아달라 부탁하면 제대로 된 적이 거의 없다. 사실, 그 친구들은 관심이 없다. 그 친구들은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일 뿐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게 당연하다. 컨텍스트를 알리는 이메일이나 슬랙 메시지를 사전에 보내놓고, 캘린더 빈 시간에 꽂아넣는다.
미팅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후속 미팅이 잡히고, 이러면 2주일 정도 본사 친구들과 해야할 일들에 대한 충분한 의견 교환이 이뤄진다. 그렇다고 항상 원하는 결과가 만들어지지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친구들은 내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걸 바탕으로 전략을 수정할지 혹은 개발 방향을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할 것인지를 한국 팀 내부에서 논의할 수 있다.
미팅은 한국식 미팅과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 기본 미팅 시간은 30분이다. 물론 격론이 오가거나 화제꺼리가 많으면 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일이 예상되는 경우 드물게 1시간 미팅을 잡기도 한다. 종종 10분, 15분만에 “아, 그거였구나!” 하면서 싱겁게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정리가 된건야 만거야??” 싶게 아리송하게 마무리된 미팅이 되어 버릴 수 있다. 출장와서 잡은 미팅을 의미없이 날려버리지 않을려면 핵심되는 이야기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시간 관리를 타이트하게 해야한다.
어느 정도의 이슈가 의견이 교환했기 때문에 다음 내용 정리는 슬랙이나 이메일로 이뤄진다. 손쉽게 이슈가 정리된다면 실행 아이템을 Jira ticket으로 만들거나 Favro Card로 만들어두고 멘션(Mention) 해준다. 이러면 그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나도 트래킹을 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 미팅에서 회의록을 작성한다. 본사 친구들이 작성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회의하면서 문서를 작성한다. 물론 한국에서 출장간 사람들이 작성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미팅이 끝난 후 기억을 더듬어 적는 편이다. 나를 포함해 같이 출장을 가는 친구들은 두어명을 빼고는 토종 한국인이기 때문에 듣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나마 회의록을 작성한다는 것만으로도 예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미팅하면 회의록을 작성할려고 하지만, 특히 출장와서 진행하는 미팅에서는 일종의 Evidence 차원에서도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라는 사실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
Google docs로 작성된 회의록은 전체 Share로 관련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관심있는 사람들도 문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논의된 이슈와 결과/결정에 대해 누구든 확인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 코멘트를 붙여가면서 추가적인 정리가 이뤄질 수 있다. 처음에는 특정한 몇몇 사람들을 찍어서 보냈었다. 하지만 본사 친구들처럼 열린 커뮤니케이션이 되려 회의 내용이 정보로써 팔딱팔딱 숨쉬게 만들어 준다는 걸 느끼게 되서 1~2년 전부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코멘트 가능한 전체 공유 링크로 전달한다. 물론 굳이 회의 내용을 안봤으면 하는 친구까지 보는 바람에 의미없는 논쟁이 생긴적도 있긴 하지만, 이 과정을 넘어서면 논쟁한 본사 직원도 어느새 친구가 된다.
오전 미팅이 있는 경우에는 거의 이 미팅 하나로 오전을 채운다. 없다면 밤사이 한국에서 온 메일들을 보거나 출장과 관련된 코딩 작업을 진행한다. 개발자는 출장전에 출장의 목표를 설정하고,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정한다. MVP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회의나 담당자를 만나러 다닌다고 보면 된다. 특히나 한국에서 본사 시스템/플랫폼과 관련된 개발을 하는 경우, 17시간이라는 시차 문제 때문에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다. 몇 년이 흘러도 이 부분은 어떻게 개선이 안된다. 그래서 출장을 오가고, 이 기간을 통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본사 친구들이 문서를 잘 만든다고 하더라도 항상 문서는 코드를 따라오지 못한다. 같은 시간대에 있고, 책상이 바로 옆자리에 있는데 굳이 문서를 볼 필요가 뭐가 있나? 걍 그 친구한테 잠깐 책상으로 가도 되겠나 물어보고 이것 좀 이상한거 같은데 봐달라고 하면 대부분 기꺼운 마음으로 대답해준다.
얼추 점심 시간이 되면 회사 구내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는다. 밖에 나가서 먹으면 이동하는 시간도 많이 들 뿐더러 오후에 미팅이 있는 경우에는 서둘로 돌아와야 한다. 더구나 구내식당보다 맛있으리라는 보장도 거의 없다. LA 로컬 음식을 몇 번 먹어봤지만, 그나마 캠퍼스의 식당이 평균 이상이다. 그리고 언제나 김치가 있다!! 의외로 맛이 있다. 특정 팀과 관련된 일을 주로 하는 경우에는 종종 해당 팀과 점심을 먹는다. 가장 어려운 영어가 생활 영어다. 용어 자체도 기술 용어를 한참이나 벗어난 이야기들을 하는데… 열심히 듣고, 열심히 밥을 먹는다.
오후에 대부분의 미팅이 몰려있고, 3개 정도 제대로 컨퍼런스 룸에서 회의를 마치고나면, 공허할만큼 기운 빠진다. 빌지 카페에서 커피를 충전해도 마지막 미팅쯤이면 말이 잘 안나온다. 더구나 잠을 잘 못잔 경우에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듣는 친구들에게 민망할 정도로 말이 꼬인다. 정책이나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미팅의 경우에는 매우 많이 난감하다. 하지만 기술 미팅의 경우에는 말로 하다 안되면 화이트보드를 이용하면 된다. 화이트보드 없는 회의실이 없으니까.
개발자들끼리도 말만 가지고 시스템이나 서비스의 동작을 설명하는건 어렵다. 한국말로 해도 어려운데, 그것도 살짝 정신줄 놓은 영어로 하는 판이니… 일면식 없는 상대끼리 얼마나 갑갑하겠는가? 이럴때 유용한 물건이 화이트보드와 노트북(랩탑말고)이다. 네모, 동그라미, 그리고 선. 이게 대부분이다. 좀 더 고급진 그림에는 실린더도 등장하지만. ㅎㅎ
모든 미팅을 마치면 잠깐 쉬었다가 미진했던 코딩을 하거나 미팅에서 나온 내용들을 확인하한 작업을 한다. 특히나 미팅에서 논의된 내용들이 MVP 관련 사항이고, 막혔던 부분들에 대한 것들이라면 정말 즐겁다. 특히 권한 때문에 진행이 안되던 경우, 미팅에서 “어, 그래? 그거 내가 주께~ 근데 그거 누가 못준다고 해?, 아… 그 친구 원래 그래. 미팅 끝나고 개발자 권한 줄테니까 함 해봐, 슬랙으로 핑줄께!”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면 정말 좋다. “원래 그런” 친구들은 어디에나 있다는 걸 새삼 깨닭는다.
코딩 작업을 하다보면 저말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생기기도 한다. 뭐 찬찬히 보고 관련된 다른 부분들을 공부한다면 충분히 답이 나오겠지만, 출장 기간은 짧다. 지금 이 지점에서 이 길이 맞다라는 걸 확신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몇 일 걸릴 일이 몇 달이 걸린다. 당장 궁금하기도 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미팅한 친구한테 핑 때리고 데스크로 간다. 옆에 붙어서 막힌 코드를 보여주고, 내가 원하는 것과 현재 코드의 문제점을 확인한다. 대부분 마법같은 환경 설정에서 뭔가가 빠졌거나 권한 부족이다. 거의 대부분은 그 친구의 자리에서 해결된다. Damn!!
저녁이 되면 LA의 교통은 정체 지옥으로 변한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정체는 7시 반까지는 최소 이어진다. 처음 출장왔을 때 정체는 5시 반부터 시작됐고, 밀려도 서울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즘은 15분 걸려오는 호텔을 45분, 1시간 걸려 도착한다. 저녁 먹으로 아예 4시 근방에 출발할게 아니라면 대부분은 근방 소텔이나 “우버 이츠(Uber eats)”로 해결한다. 최소 3일에 한번, 저녁은 한식을 먹는다. 소텔에 있는 순두부집에서 저녁을 많이 먹었는데, 사람들이 질려한다. -_-;;;; 우버 이츠라는 신세상을 발견한 다음에는 K타운 갈 일이 더욱 없어졌다. 굳이 그 오래 걸리는 길을 차타고 갈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보통 퇴근은 캠퍼스에서 밥을 먹는 경우에는 8시쯤 퇴근한다. 밥도 먹고 밀리는 순간도 피하고. 이렇게 돌아와서 씻고 뻣으면 그대로 잔다. 그대로 잘 수 있다면 상당히 행복한 케이스다. 뒤척이다가 맥주 한잔? 와인 한잔 하는 파티와 어우리게 될 수도… 물론 분위기 좋은 바에가서 먹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 호텔방에서 어울려서 먹는다. 주인장이 되버린 방 주인은 다음날 크리링을 신청해야겠지만. 처음 출장와서 한동안은 술을 마시면 그나마 잠을 자는데 도움이 됐지만 지금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다. 어떤일이 생겨도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약속의 그 시간이기 때문에 되려 늦게까지 이야기하느라 잠을 못자면 다음 날이 더 힘들다.
이렇게 일정을 마쳤으면 이제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 여러 음악앱을 깔아서 써봤는데, 내 취향을 알아주는(??) 뮤직을 틀어주는 앱은 유투브인 것 같다. 김광석 노래나 클래식 10곡 깔아놓고 잠을 청한다.
주말을 낀 출장의 경우, 대부분은 잔다. 잘 수 있을때까지 잔다. 12시간 이상 침대와 몰아일체가 되어 있으면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아프다. 연속으로 이렇게 잔적은 없지만, 드문드문이라도 이정도 자면 그나마 괜찮다. 적당히 깬 후 호텔 비스트로에서 커피 한잔 먹은 다음, 저녁 먹으로 간다. 보통 주말은 K타운 고기집에서 하루 한끼 먹는 식사를 해결한다. 이렇게 먹고 나면 다음 날 일요일도 12시간 이상 잘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잔다고 하더라도 항상 새벽 3, 4시에는 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귀신같이 눈이 떠진다. 하루 한끼가 말이 되냐고 할지 모르지만 잘 수 있을 때 자는게 그 다음 주의 시간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이렇게 평일의 출장 일상은 이렇게 흘러간다. 주말이 끼지 않은 출장의 경우에는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아침에 한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탄다. 어찌됐든 한국에 돌아와서 랜딩하는 순간, 넘 기분이 좋다. 참 신기한 일이지만, 집에 와서 김치찌개랑 소주 한잔 먹고 잠자면 그 못자던 잠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10시간 가까이를 논스톱으로 잔다.
출장후에는 출장에서 논의된 이야기들을 내부적으로 가능한 빠르게 공유하고, 그 다음 스텝을 F/U해야 한다. 망각의 동물이 사람이다. 나도 까먹지만, 본사에서 나랑 미팅한 그 친구들도 까먹는다. 후속 작업이 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지 본사에서 미팅한 내용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결과로 매듭될 수 있다. 다음 한주는 지난 주 출장의 내용들을 공유하고, 어떤께 후속 작업을 진행할지 팀에 있는 친구들이랑 이야기해야 한다.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을 잘 하자.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