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Leaders eat last)에서 인간의 기본 심리를 4가지 호르몬의 동작으로 정의한다.
- 엔돌핀(Endorphins) – 생존에 대한 두려움 혹은 살아야 한다고 느꼈을 때. 어느 글에서는 이게 좋은 호르몬이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지만 결국 두려움이 이 호르몬을 만들어낸다.
- 도파민(Dorphamins) – 성취. 혹은 다른 사람을 이겼다고 느꼈을 때.
- 새로토닌(Serotonins) – 다른 사람을 돌보고, 이들을 위해 희생하고자 함. 대표적으로 리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이런 호르몬을 가진다.
- 옥시토신(Oxytocins) – 타인에 대해 사랑을 베풀고, 그 자체에서 기쁨을 얻는다.
인간이라는 동물로써 차별성을 가지는 가장 큰 부분은 사회성이다. 조직안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개인주의를 강요받는다. 특히 이런 개인주의의 팽배는 한국의 경우, 1990년대 말 IMF 시대를 거치면서 보편화됐다. 미국도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 레이건 정부를 거치면서 이런 정책이 일반화됐다. 자본주의의 팽배는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건으로 보기 시작하고 하나의 숫자로써 개인을 취급하면서 보편화되었다.
선사시대 이후로 작던 크던 조직내에 소속된 개인을 돌보는 문화가 하나의 숫자로써 여기지는 시대로 변화되었다. 사회의 가치보다는 개인의 성취 혹은 성공이 더 우선시하는 개인주의가 기본 패러다임이 되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자본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풍요로움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2차 세계 대전이라는 고난의 시대를 거치면서 세상은 급속하게 풍요의 시대를 맞았다. 한국의 경우에도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소위 베이비부머라 불리는 세대가 나타났으며 70년대 베트남 전쟁과 한강의 기적이라는 산업적 변혁을 맞이하면서 더 이상 배고프지 않는 시대에 진입했다. 80년대 90년대를 초반을 거치면서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를 관통했다. 당시의 부모 세대는 평생 직장이라는 울타리에서 자신의 자녀 세대들은 자신에게는 없었던 풍요로움을 줄 수 있었으며, 또한 “용”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희망으로 자녀의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다른 사람보다는 내가 우선이었으며, 이런 사회 풍토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경쟁 사회로의 진입을 부추켰다. 90년대 IMF 이후로 이런 기조는 더욱 더 남을 돌아보기보다는 자신의 앞을 보고 더욱 더 채찍질 하는 사회를 고착화시켰다.
이런 사회적인 풍토에 제대로 일격을 가한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엔론(Elon)사태고, 2008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미국 금융 위기다. 자신들만의 세상(Inner Circle)의 이익을 최우선하기 위해 장부를 조작했으며, 단일 회사 수준이 아니라 누구도 예측못했던 글로벌 위기를 촉발했으며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고 거리를 헤매게 만들었다. 이들 Inner Circle 그룹은 조직의 다른 사람들은 단순히 숫자에 불과했으며, 사람 혹은 동료가 아니라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반성이 미국 사회에서는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고, 주주우선주의가 아닌 구성원 우선주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Google, Facebook을 포함한 IT 기업들(Amazon은 글쎄???)이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고, 가장 대표적인 기업으로 Southwest Airline과 국내에도 있는 Costco가 칭송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어떨까? 기업들의 Moral Hazard로부터 촉발되어 베이비부머 세대 수십만을 길거리로 내몬 IMF 사태 이후, 과도한 인력 유동성을 확보한 기업들은 더욱 더 자기반성없이 성과지상주의로 개인들을 초 경쟁사회로 내몰고 있다. 이제 도구로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기업의 40, 50대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두려움이 떨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어찌되었든 옆자리의 동료을 이겨야하고, 더 좋은 라인을 타기 위해서 사내정치에 몰두한다. 그리고 승리의 보답으로 인센티브라는 단물을 챙긴다. 부모 세대들의 10, 20, 30대 자녀들은 어떨까? 그들은 풍요와 경쟁의 한 가운데에 있다. 언제까지나 피말리는 경쟁을 버텨내는 것은 싫지만 지금까지 누려왔던 풍요로움을 포기하기는 싫다. 결국 그들의 선택지는 공무원 혹은 대기업이다. 부모 세대의 경쟁은 점진적이었다. 이에 반해 이들의 경쟁은 바늘구멍같은 좁은 자리를 향해 경쟁해야한다. 결국 경쟁은 일상회되고, 사회는 피로사회로 전환된다. 스카이캐슬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자 시스템의 문제다.
현재의 자본주의 시대는 인센티브의 시대다. 엔돌핀과 도파민의 시대다. 회사라는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 책상이 사라질지 모르는 두려움(엔돌핀)을 안고 있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은 동료, 팀, 혹은 다른 회사와 경쟁한다. 그들의 경쟁은 몇 개의 숫자로 정의된다. 그 숫자가 맞춰지면 인센티브(도파민)가 지급된다. 이 숫자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상실의 두려움에 떤다. 한국의 대표적인 리더들은 항상 숫자를 우선에 둔다. 회사는 매출 목표, 수익 목표. 그 숫자들은 출근길에 쓰러지거나 스트레스에 지쳐 떠난 직원들을 패배자로 규정시킬 수 있도록 리더에게 당위성을 부여한다. Inner Circle에 충성해야하고, Inner Circle이 지정한 숫자에 충성해야 한다. 고객은 숫자이며, 직원은 숫자를 채우는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는 왜 일하는가? 회사와 같은 인위적인 공동체에 개인은 소속의 이유를 갖는다. 공동체의 리더는 조직의 존재 이유를 대변하고, 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공통체의 일원인 우리는 그 가치에 동의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데 동참하기 원한다. 하지만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설파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한 리더도 대부분 이상론으로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정말 어렵다. 세상을 혁신하겠다는 스티브 잡스나 세상사람들에게 컴퓨터라는 동일한 권력을 쥐어주겠다는 빌 게이츠가 이런 대표적인 리더이다. 이들이 현업에 있던 당시에 함께 일했던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들은 아마도 이런 생각에 깊이 동감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이들이 떠나버린 애플이나 마이크로소스프트에 이런 생각에 동의하면서 일하는 구성원들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새롭게 생겨나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위해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 그들이 정의하는 공동체를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회사의 구성원들 모두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다들 노력하고 있다. (혹은 노력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현실론으로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그 안에 있다는 것 자체는 너무 슬프지 않은가?
이 관점에서 나는 어떤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왜 아침에 일터로 향하는가? 내가 현재의 회사에 조인한 이유는 명확하다.
고객들에게 의미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고, 그 서비스를 통해 고객들과 공감하고 싶다.
나는 여전히 이 목표에 충실한가 라는 질문에 지금까지는 “예” 라고 답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 이야기된 회사의 가치 역시 이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Player experience first
Dare to dream
Thrive together
Execute with excellence
Stay humble; stay hungry
숫자 혹은 성과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개발을 포함해 모든 일이 마찬가지지만 개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팀 혹은 구성원들과 함께 하는 공동의 작업이다. 따라서 리더로써 해야할 일은 명확하다. 조직의 목표와 비전을 명확하게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인지시켜야 한다. 함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동감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동감되지 않는 리더의 비전은 그 사람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지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동감은 반드시 필요하다.
동감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치는 구성원간의 신뢰다. 공통체가 공동체로써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간은 신뢰 혹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다. 신뢰가 무너지면 조직의 근간이 흔들린다. 사람의 진실성(Integrity)에 대해 의문을 품는 순간, 신뢰에는 금이 간다. 신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쉽지않다. 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일순간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카톡이나 페이스북 메신저가 일상화된 현실에서 온라인 상에서만 이뤄지는 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신뢰라는 것에 대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텍스트보다는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때 오히려 사람사이의 진실함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나 같은 공간을 함께하는 동료라면 그 사람의 책상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밀레니엄 세대는 이런 오프라인 대화를 부담스러워한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자연스럽게 얼굴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전을 통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정해지고, 이에 대한 공감과 같이 하는 동료간의 신뢰가 바탕된다면 이제 여정을 떠날 수 있다. 이 여정에는 가장 필요한 요소는 헌신(옥시토신)과 배려(세로토닌)이다. 여정을 통해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팀과 개인은 그에 따르는 성취를 이뤄야 한다. 물론 성취의 기본 개념은 일을 완성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성취의 또 다른 면으로 중요시하는 것은 배움이다. 과정이 항상 성공적일 수만은 없다. 여정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배움이 있었다면 이 또한 성취의 또 다른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험들이 모두 모여 우리가 이루고자하는 비전을 달성할 수 있다.
성취는 개인의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이럴 때 느끼는 도파민은 값지다.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새로운 배움을 통한 성취는 개인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런 도움이 팀의 작업에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들의 성장을 자극한다면 더할 나위없다. 하지만 성취가 성과라는 단어와 만났을 때, 그리고 그것을 개인 혼자만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된다.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우리” 보다는 “나” 가 우선한다. 특히나 이런 분위기를 리더가 조장하거나 방임하게 되면 구성원들은 단기 성과에만 매달린다. 시작은 도파민이었지만, 이후에는 엔돌핀이 구성원들을 지배한다.
회사 혹은 조직의 문화에 따라 이런 도파민과 엔돌핀을 무기로 구성원들을 다루는 경우가 있다. 소위 당근과 채찍이라는 이름으로 성과를 강요한다. 이러면 구성원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뭔가를 보여줘야만 스스로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건 사람이라는 동물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개개인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병폐가 지속되면 자본의 논리가 조직의 논리가 된다. 사람을 물질화시키고, 투입 대비 효율이라는 가치 명제가 횡횡하게 된다. 구성원이 더 이상 그 효용이 다하면 버려도 되는 재화(Commodity)가 되어 버린다.
조직의 리더가 어떤 방식으로 조직을 이끌고, 이에 구성원들이 동의하는가에 따라 그 조직의 문화가 결정된다. 자본의 논리에 따른 “각자도생“의 문화를 가질 것인지 서로 뒤를 봐주는 공생의 문화를 가질 것인지가 결정된다. 조직장의 스타일이 큰 역할을 담당하겠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성원들이 이에 동감하고 함께하는지도 중요한 역할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조직은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문화를 가진 조직이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목표가 있고, 이걸 달성하고 성장하면서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조직을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중간 리더는 상당히 어정쩡한 존재다.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Authority)가 있는 것이 아니고 책임을 지고 싶어도 질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결정을 해야할 때 빠른 결정을 내리는 것도 좋은 자질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조직은 수직, 계층 조직이다. 각 조직별로 나름의 사일로(Silo)를 가지고 있으며, 이 영역을 영역밖의 사람이 들어갈려고 했을 때 받는 이물감은 상당하다. 인위적으로 이런 형국을 초래하기보다는 중간 지점에서 접점을 만들고 서로 얼굴 맞대고 최선의 결론이 도출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간계의 리더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결론이 안된다면 사일로의 최상단이 서로 논의할 수 있는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궁극적으로 구성원들 개개인이 심리적으로 Circle of Safey 안에 존재한다는 믿음이 생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준다고 해서 덥석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한두달 열심히 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일상을 통해 체감될 수 있도록 리더와 구성원들이 서로 노력해야한다. 그 결과가 문화로 정착되야 한다. 결론은 문화다.
– 끝 –